노루목향기 – 자연 속 여성 자립공동체의 실제
노년기를 준비하는 여성 1인 가구에게 있어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살 것인가’는 노후의 새로운 삶의 방식 전체를 결정짓는 중요한 질문이다. 최근 들어 도심을 떠나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과 공동 돌봄을 실천하려는 시도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여성 자립 공동체 ‘노루목향기’다.
이 글에서는 노루목향기의 철학, 운영 방식, 구성원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중장년 여성이 실제로 선택 가능한 공동체 대안으로서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1. 왜 ‘노루목향기’인가?
노루목향기는 서울에서 약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경기도 양평군에 자리한 공동체다. 산과 들이 어우러진 마을 안에 10여 명의 중장년 여성들이 함께 살며, 각자의 방을 두고, 공동 부엌과 텃밭, 공방 공간 등을 공유하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노루가 지나가던 고요한 언덕’이라는 이름처럼, 이곳은 도시의 속도에서 벗어나 심신을 치유하고, 일상의 자립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안정된 터전을 제공한다.
이 공동체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히 주거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이 함께 일하고, 먹고, 돌보며 하나의 작은 마을을 만들어간다는 점이다. 특히 은퇴한 50~70대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공동체를 직접 설계하고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외부에 의해 형성된 ‘공공 모델’이 아닌 ‘생활형 자율 공동체’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2. 운영 방식: 자율과 책임의 균형
노루목향기의 운영은 ‘자율적 참여와 공동 책임’이라는 원칙 아래 움직인다. 공동체는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며, 입주자는 단순한 세입자가 아니라 조합원으로서 일정한 의무와 권한을 가진다. 예를 들어, 월간 회의에서 예산 사용 계획이나 행사 일정 등을 함께 결정하고, 각자 맡은 역할(공동 부엌 운영, 텃밭 관리, 외부 방문자 응대 등)을 수행한다.
입주는 별도의 ‘입주 심사’를 거쳐야 하며, 최소 6개월 이상 공동체 생활 체험을 진행한 후 정식 조합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이 과정은 신중하게 진행되며, 구성원 간의 관계 형성 가능성, 생활 가치의 유사성 등이 중요한 평가 요소로 작용한다.
3. 자연 기반 프로그램: 치유와 성장
노루목향기의 가장 강력한 장점 중 하나는 자연 기반의 일상 프로그램이다. 매주 진행되는 요가 수업, 산책 명상, 계절별 공예 워크숍은 구성원들이 몸과 마음의 균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텃밭에서 계절 채소를 기르고, 함께 식사를 준비하는 과정은 단순한 활동 이상의 정서적 교감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외부 강사가 아닌 공동체 내부의 구성원이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한 입주자는 “누군가 가르쳐주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걸 꺼내 놓는 게 공동체의 힘”이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이전에 미술교사였던 한 입주자는 매주 수채화 수업을 운영하며, 다른 입주자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다.
4. 경제적 운영 구조
노루목향기의 또 다른 장점은 생활비의 절감 효과다. 도심의 1인 가구와 비교해볼 때, 공동 식사, 유틸리티 공동 부담, 자급자족 가능한 식재료, 공동 차량 사용 등의 방식은 매달 수십만 원에 이르는 지출을 줄여준다.
또한 일부 구성원은 소소한 수입도 올린다. 예를 들어, 직접 만든 천연비누, 된장, 공예품 등을 마을장터나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판매하면서 공동체 재정에 기여하기도 한다. 이러한 ‘공동체형 소득 모델’은 은퇴 이후에도 일정 수준의 경제 활동을 이어가고 싶은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대안이 된다.
5. 외부와의 연결: 지역사회와의 협력
노루목향기는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폐쇄형 공동체가 아니다. 인근 마을 주민들과 정기적으로 교류하고, 지역 행정기관과도 협력하며 마을 축제, 환경 정화 활동 등 다양한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외부 네트워크는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새로운 입주자 유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6. 입주자들의 실제 경험
공동체의 진정한 가치는 입주자들의 이야기에서 드러난다. 58세에 입주한 한 구성원은 “처음엔 두려웠지만, 지금은 여기서 보내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하다”고 말한다. 또 다른 구성원은 “혼자 있으면 가끔 이유 없이 우울했는데, 여기서는 그런 감정이 줄었다”고 했다.
물론 마찰도 있다. 생활 방식이나 의견 차이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동체에서는 이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주기적인 소통 회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간다.
나오는 글
노루목향기는 단순한 공동 거주의 개념을 넘어, 여성 1인 가구가 주체적으로 노후를 설계하고 실현할 수 있는 삶의 실험장이다. 혼자서는 막막했던 생활도, 누군가와 함께하면 의미 있는 일상이 된다. 자연 속에서 함께 일하고, 먹고, 치유하며 살아가는 삶. 이는 단순히 낭만적인 상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경기도 양평에서 실제로 실현되고 있는 가능성이다.
노루목향기의 사례는 공동체 노후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방향을 제시해 준다. 앞으로 더 많은 여성들이, 더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에게 맞는 공동체를 선택하고 구축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그 여정의 출발점에서, 이 글이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