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울의 도심 한복판, 특히 은평구 불광동에 자리 잡은 작은 공동체 주택 하나가 조용히 주목받기 시작했다. 바로 ‘여백’이다.
이 공간은 ‘적당한 거리 두기 속의 교류’를 실천하며 삶의 균형을 찾는 새로운 실험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여성 1인 가구의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서울 지역의 40대 이상 여성 1인 가구는 2025년까지 전체 1인 가구의 약 3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도시 한가운데서 홀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가볍지 않은 선택이다. 사회적 고립, 정서적 불안, 경제적 취약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여백’이 탄생한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여백'의 설립 배경부터 운영 철학, 실생활 사례, 그리고 여백이 제시하는 도시형 여성 공동체의 가능성을 전방위적으로 조명한다.
1. 여백이 등장하게 된 배경
통계청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1인 가구는 이미 전체 가구의 40%를 넘었고, 그중 중장년 여성의 비중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도시의 1인 가구는 높은 주거비와 사회적 고립, 안전 문제에 취약하다. 특히 여성의 경우, 일상 속에서의 불안 요소가 남성보다 크기 때문에 독립적이면서도 연결될 수 있는 새로운 주거 대안이 필요하다. 여백은 이러한 사회적 요청에 응답하며 서울시 사회주택 정책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2. 공간 구성과 운영 방식
여백은 총 10가구가 거주할 수 있는 규모로, 각자의 독립된 방 외에도 공동 부엌, 거실, 세탁실, 수납공간 등을 공유한다. 모든 공간은 단순한 효율을 넘어서, ‘교류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배치’가 특징이다. 예를 들어, 공동 부엌은 자연스럽게 마주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어 입주자 간의 대화를 유도한다.
운영 주체는 비영리 사회주택 법인과 서울시가 협력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입주자들은 사회적 주택의 취지를 이해한 후 지원하게 된다. 입주 조건은 여성 1인 가구로, 보통 40~60대가 중심이며, 일정한 면접과 사전 모임을 통해 공동체 생활에 적합한지를 판단한다.
입주자들은 매월 한 번 이상 모임을 갖고, 공동 식사, 청소, 회의 등을 통해 생활의 방향을 함께 조율한다. 그러나 모든 활동은 ‘강제성’이 아닌 ‘자율성’을 기반으로 하여, 참여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한다.
3. 독립성과 공동체의 균형
여백의 핵심 운영 철학은 ‘혼자이되, 함께’이다. 입주자들은 각자의 일상을 존중받으며 살아가되, 필요할 때 손을 내밀 수 있는 공동체 안에 머무른다. 실제로 입주자들 간의 친밀도는 천천히 쌓이는 편이며, 누군가 억지로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그 덕분에 여백은 공동체 생활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고,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입주자들에게도 호응을 얻고 있다.
한 입주자는 “관계에 너무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누가 내 안부를 물어봐준다는 게 이렇게 든든할 줄 몰랐다”고 말한다. 또 다른 입주자는 “퇴근 후 불이 켜진 집들을 보면 안심이 된다. 누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이 줄어든다”고 전했다.
4. 여성 공동체로서의 의미
여백은, 여성의 삶의 조건을 중심에 둔 ‘여성형 공동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이곳에는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이혼 또는 사별 후 혼자 살고 있는 여성이 많다. 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혼자는 좋지만, 절대 고립되고 싶지는 않다”는 욕구를 공유한다.
또한 여백에서는 여성들이 사회에서 경험했던 차별, 불안, 스트레스를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감정 나눔의 밤’, ‘책 읽는 모임’, ‘여성 건강 워크숍’ 등은 여성의 일상과 밀접한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여백이 일종의 ‘여성 회복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에서 조용히 밀려났던 중장년 여성들이 다시 연결되고, 회복되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과정은 이 공동체가 가진 가장 본질적인 가치다.
5. 도심 공동체의 장점과 과제
여백은 서울 도심이라는 지리적 장점 덕분에 직장을 유지하고 있는 입주자에게도 적합하다. 실제로 많은 입주자가 오전에는 출근하고, 저녁에는 공동 식사에 참여하는 형태로 일상과 공동체를 병행한다. 또한 병원, 문화시설, 대중교통이 가까운 점도 도심형 공동체의 경쟁력이다.
그러나 과제도 있다. 도심의 부동산 비용은 여전히 부담이 크며, 사회주택이라고 하더라도 장기적인 운영 재정에는 한계가 있다. 또 자율적 구조가 장점이지만, 갈등이 생겼을 때 이를 중재하는 시스템이 다소 느슨하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여성 공동체라는 특수성 때문에 외부의 편견이나 관심에 노출되기도 한다. ‘왜 여성끼리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이 여전히 존재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여백은 공동체의 의미를 사회에 조금씩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병행해야 한다.
나오는 글
여백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여성 1인 가구에게 실질적인 대안이 되고 있는 공동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각자의 삶과 생각을 존중하며 공존을 시도하는 이 실험은 많은 중장년 여성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이곳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 아니라, ‘공동체의 의미를 알고, 그것을 실천하고 싶은 사람’에게 맞는 곳이다. 그러나 여백이 보여주는 도시형 여성 공동체 모델은 앞으로 더 많은 도시에서, 더 다양한 방식으로 복제될 수 있다.
서울 도심 속에서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싶은 여성들에게, 여백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방법이다. 그 실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그 변화는 아주 작은 일상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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