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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1인가구 노후 공동체

케냐의 남성 출입 금지 여성 마을, 우모자 빌리지 -폭력에서 자립으로, 아프리카 여성들이 선택한 공동체의 미래

by 영원히 스무살 2025. 8. 6.

우모자(Umoja)는 스와힐리어로 ‘단결’을 뜻한다. 이 단어를 이름으로 내건 케냐 북부의 한 마을은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여성 공동체 중 하나다.

케냐의 남성 출입 금지 여성 마을, 우모자 빌리지 -폭력에서 자립으로, 아프리카 여성들이 선택한 공동체의 미래

이곳은 남성의 출입이 금지된 여성 전용 마을이며, 폭력과 차별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공간이다. 우모자 빌리지는 단순한 피난처가 아니라, 교육, 경제, 돌봄, 거주가 통합된 진정한 여성 자립 공동체로 발전해왔다. 이 글에서는 우모자 마을의 탄생 배경부터 구조, 운영 방식, 그리고 한국 사회가 배울 수 있는 점까지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우모자 빌리지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우모자 마을은 1990년대 초 케냐의 삼부루(Samburu) 지역에서 설립되었다. 이 지역은 보수적인 부족 문화가 강한 곳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이 일상처럼 존재해왔다. 특히 영국군 주둔 시절 발생했던 성폭력 피해 여성들과 조혼, 가정폭력, 강제결혼에서 탈출한 여성들이 안식처를 찾지 못한 채 사회로부터 버려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여성, 레베카 롤로솔리(Rebecca Lolosoli)가 중심이 되어 여성들만의 안전한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우리 여성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며 자신과 같은 피해 여성들을 모아 마을을 세웠고, 그것이 바로 우모자의 시작이었다.

남성 출입이 금지된 마을

우모자 빌리지의 가장 상징적인 특징은 남성이 들어올 수 없다는 점이다. 이곳의 주민은 모두 여성과 그 자녀들이다. 남성은 방문객 자격으로만 낮 시간에만 마을에 들어올 수 있으며, 거주나 통제권은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

 

이는 단순한 차별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조치였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이 폭력과 억압 없이 살기 위해서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남성 없는 마을’이라는 극단적이지만 효과적인 해법이었다.

 

이 마을은 많은 비판과 위협에 직면했지만, 오히려 그 존재 자체가 케냐 사회에서 여성 인권 문제를 대중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마을의 구조와 운영 방식

우모자 마을은 외부로부터 독립된 방식으로 운영된다. 물리적 경계뿐 아니라 운영 철학도 완전히 자립적이다. 마을의 모든 운영은 여성 주민들의 회의와 합의를 통해 결정되며, 수익 활동, 교육, 위생, 보안까지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경제적 자립을 위해 주민들은 전통 공예품을 제작해 관광객과 연계된 마켓에서 판매한다. 특히 목걸이, 팔찌, 직물 등은 우모자의 대표적인 수입원이 되며, 이를 통해 마을 유지비와 아이들의 교육비를 충당하고 있다.

 

또한 우모자에는 초등 수준의 교육시설과 여성 대상 법률 교육, 성교육, 자립 교육 등이 마련되어 있어 단순한 피난처를 넘어 여성 역량 강화의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일상과 돌봄의 방식

주민들은 대부분 조혼, 성폭력, 가정폭력을 겪고 마을로 들어온 여성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겪은 아픔을 고립시키지 않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며 공동체 안에서 치유해나간다. 누가 누구의 아이를 돌보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공동 양육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고령 여성과 젊은 여성이 함께 노동과 육아를 분담한다.

 

또한 마을 내부에는 의사 결정권과 운영 책임이 동등하게 분산되어 있어, 특정 리더가 권력을 독점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감시와 균형이 이뤄진다.

외부의 시선과 마찰

우모자 마을은 초창기부터 인근 지역의 보수적인 남성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받아왔다. 마을이 여성들에게 “불순한 생각”을 심어준다는 이유로 위협과 공격을 당하기도 했고, 실제로 몇 차례 폭력 사태가 벌어진 적도 있다. 하지만 이런 위협 속에서도 여성들은 꿋꿋이 공동체를 지켰고, 결국 지역 경찰과 NGO, 국제 언론의 관심을 끌며 점차 사회적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현재는 케냐 여성부와 UN 여성기구(UN Women)의 지원 아래, 보다 안전하게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다.

미디어와 국제적 주목

BBC, CNN, 뉴욕타임스 등 주요 언론에서 우모자 마을을 여러 차례 다뤘으며, ‘남성 출입 금지 마을’이라는 극적인 상징성 덕분에 전 세계에서 여성 인권 운동의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특히 아프리카 내부에서도 이 모델을 벤치마킹한 유사 공동체가 생겨났으며, 국제 여성 단체들과 협업을 통해 교육, 의료, 주거 지원도 확장되고 있다.

 

한국 사회가 배울 수 있는 점

우모자 빌리지는 문화적 배경이 한국과는 다르지만,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첫째, 여성 스스로 만든 공동체가 가장 강하다. 한국에서도 여성 1인 가구의 증가와 더불어 자발적인 커뮤니티 주거 모델이 요구되지만, 대부분은 정부나 민간이 주도한다. 우모자는 당사자 중심의 모델이 얼마나 강력하고 지속가능한지를 보여준다.

 

둘째, 돌봄과 주거를 분리하지 않는 구조다. 한국은 여전히 돌봄은 가족에게, 주거는 개인에게 떠넘기는 구조다. 하지만 우모자에서는 모든 삶의 영역이 공동체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셋째, 심리적 안전이 물리적 안전보다 중요할 수 있다. 우모자는 물리적 편의성보다 ‘존중받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한국도 주거 정책에서 정서적 안전이라는 요소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비정형적 삶의 방식을 사회가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우모자는 처음에 “여성들이 너무 급진적이다”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인정받았다. 한국도 다양한 여성 삶의 방식을 제도 안으로 포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나오는 글

우모자 빌리지는 ‘여성의 독립된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다. 폭력에 맞선 자발적인 선택, 그 선택을 실현해낸 연대, 그리고 지역사회와 연결되려는 노력까지. 이 마을은 매우 작지만, 전 세계 여성들에게는 크고 깊은 영감을 주는 사례다.

 

지금 한국에서도 여성 1인 가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고령화와 돌봄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우모자의 실험은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여성이 안전하게 살기 위한 구조’를 고민하는 우리 사회에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