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닌 노후를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

프랑스 몽트뢰유(Montreuil)에는 전 세계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는 독특한 공동체가 있다. 바로 ‘바바야가 하우스(Baba Yaga House)’다. 이곳은 단순한 공동주택이 아니다. 자립적인 고령 여성들이 스스로 설계하고 운영하는, 철저히 여성 주도형 노후 커뮤니티다. 돌봄, 자율성, 민주적 운영이라는 세 가지 가치를 기반으로 한 이 공동체는, 고령화 시대를 준비하는 각국 도시들에게 중요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처럼 고령 여성 1인 가구가 급증하는 나라에 이 공동체가 주는 시사점은 결코 작지 않다.
Baba Yaga House란 무엇인가?
바바야가 하우스는 2013년 프랑스 파리 인근 몽트뢰유에 설립된 고령 여성 전용 공동주택이다. 이 공동체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입주민들이 이 공동체를 직접 기획하고 운영한다는 점이다. 흔히 고령자의 주거 공간은 복지기관이나 정부 주도 아래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바바야가 하우스는 이 흐름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공동체의 이름은 동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마녀 ‘바바 야가(Baba Yaga)’에서 따왔다. 전통적으로는 무서운 이미지의 노파이지만, 이 공동체는 그 이미지를 ‘지혜롭고 강한 여성’으로 재해석했다.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존엄하고 자율적인 삶을 살아가는 여성의 상징으로 바바야가를 채택한 것이다.
설립 배경: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이 들고 싶다
바바야가 하우스는 2000년대 초반, 은퇴를 앞둔 프랑스의 여성 운동가 6명이 중심이 되어 기획되었다. 그들은 기존의 노인 요양 시스템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었다. 나이 들수록 사회에서 고립되고, 시설에 들어가면 자율성과 주체성이 사라지는 현실. 특히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 수명이 길기 때문에, 노후에 홀로 남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여성끼리 사는 공동체를 직접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공간 구조와 운영 방식
바바야가 하우스는 총 21세대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 16세대는 60세 이상의 여성 입주자 전용이다. 나머지 5세대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임대주택으로 운영된다.
개별 주거 공간은 사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거실, 주방, 정원, 워크숍실 등 다양한 공동 공간이 함께 마련되어 있다. 1층에는 지역 주민도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 센터가 운영되고 있어, 공동체가 외부와 단절되지 않고 지역사회와 연결되도록 구성되었다.
운영 원칙은 자율성과 민주주의에 기반한다. 입주자들이 자체적으로 규칙을 만들고 회의를 통해 공동체 운영을 결정하며, 만장일치제 의사결정 구조를 유지한다. 돌봄도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의료적 돌봄보다는 정서적, 일상적 돌봄을 서로 주고받는 구조다.
입주 조건과 생활 방식
입주 대상은 60세 이상 자립 가능한 여성이며, 소득 수준은 다양하다. 중산층부터 저소득층까지 입주할 수 있도록 공공주택 수준의 임대료가 적용된다. 신청자는 일정 대기기간 후 서류 심사와 인터뷰를 거치며, 입주 전에는 공동체 생활에 대한 워크숍도 수료해야 한다.
바바야가 하우스는 요양 시설이 아닌 생활 공동체이기 때문에, 의료 서비스는 개별적으로 외부 기관을 통해 이용해야 한다. 대신,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 연대는 입주자 간의 상호작용으로 충분히 보완된다.
바바야가 하우스가 주는 메시지
이 공동체가 유럽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매우 강렬하다. 노후에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현실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나이 든 여성도 존엄하게 살 수 있으며, 국가나 가족에 의존하지 않아도 ‘함께라면’ 안정된 노후를 보낼 수 있다고 증명했다.
다양한 다큐멘터리와 연구 자료, 언론 보도를 통해 바바야가 하우스는 세계적으로 알려졌으며, 현재 프랑스 전역뿐 아니라 캐나다, 벨기에, 독일 등에서도 유사 모델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 사회가 배워야 할 점
바바야가 하우스는 현재 한국이 직면한 문제들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고령 여성 1인 가구 증가, 고독사 위험, 정서적 고립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첫째, 한국은 대부분의 공동체 주거가 정부나 지자체 주도 방식이며, 입주자의 자율성과 주체성이 부족하다. 바바야가처럼 입주자가 공동체의 설계자이자 운영자가 되는 구조는 큰 시사점을 준다.
둘째, 공동체 내 민주적 운영이 중요하다. 한국의 공동주거는 갈등이 잦고, 위계적 관계가 문제로 지적되는데, 바바야가는 평등한 회의 구조와 상호 책임 구조를 통해 갈등을 최소화했다.
셋째, 한국의 노후시설은 주로 치료와 보호 중심이다. 그러나 바바야가는 삶의 질, 정서적 교류, 문화적 자율성을 더 강조한다. 이 접근 방식은 더 많은 고령 여성들이 납득하고 참여할 수 있는 공동체 모델로 발전 가능성이 높다.
넷째, 지역사회와의 연결도 핵심이다. 바바야가 하우스는 폐쇄형이 아니라 지역 행사와 시설을 공유하며 개방적 공동체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도 ‘공동체-지역사회-복지기관’이 연결된 유기적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나오는 글
바바야가 하우스는 노후의 새로운 정의를 보여준다. 단순한 복지시설이 아닌, 여성 스스로 설계한 공동체에서 자율적이고 존엄한 노후를 살아가는 모델이다. 그들은 외롭지 않고, 서로를 돌보며,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
한국도 고령 여성 1인 가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제는 제도 중심의 돌봄에서 벗어나, 당사자 중심의 삶의 구조를 설계할 시점이다. 바바야가 하우스는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주고 있다. 그 길은 어렵지만 실현 가능하다. 앞으로 한국 사회도 바바야가 하우스 같은 여성 공동체가 다양하게 태어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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